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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THE ISSUE2] 다양성 시대의 광고∙마케팅


나이 어린 사람들은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나는 나의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킨다

(이런 연습을 나는 무수히 해왔다)

 


 

 

 

김수영(1920~1968)의 시 ‘현대식 교량’의 1연 마지막 부분이다. 이 다리는 ‘현대식’이란 수식어로 알 수 있듯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아니, 과거와 미래를 잇고, 그 위가 현재라는 시공간일 수도 있다. 젊은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다리를 건너는데, 시인과 같은 기성세대는 영 어색하기 짝이 없다. 알아서 잘 뛰는 심장을 억지로 스위치를 내릴 듯 정지시킬 정도로 긴장을 한다. 애써 연습을 하여 겨우겨우 해낸다. 시인에게 젊은이들은 ‘사랑’과 ‘신용’을 바탕으로 그런 생각과 행동이 이미 지나간 ‘20년 전’의 감각과 사실임을 상기시켜 준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시인의 자리에 기성의 마케터를 두고, 그들을 당황하게 하는 ‘교량’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공교롭게 위의 시에서도 ‘20년 전’이란 구체적인 시기를 말했는데,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1998년을 필자는 한국 ‘디지털 대중화 원년’이라고 한다. 그해 한국 인터넷 사용자 비율이 20%를 돌파했다. A에서 B라는 특정한 두 지점만을 연결하던 기존의 다리에서, 다리 자체가 생명력을 지니고 자기복제를 하면서, A1, A2, A3… 그리고 B1, B2, B3…의 무수한 출발점과 도착지를 양안에 만들었다. 곧 어느 한 속성을 내세워서 특정한 한 집단을 공략하는 게 의미가 없고, 실현되지도 않게 되었다. 이걸 ‘대열-무리-벌떼’의 비유를 써서 말하기도 한다. 대열(column)은 기본적으로 직선이고 처음과 끝이 명확하며 간격은 기본적으로 일정하다. 무리(herd)는 간격과 거리가 균일하지는 않지만 선두와 후미를 구분할 수 있고 방향이 확실하다. 이에 비하여 벌떼(swarm)는 문자 그대로 어디로 향하는지도, 어느 쪽이 선두그룹인지도 알 수 없고, 수시로 그 방향이 바뀌어 종착점을 예측할 수 없다. 

 

 

결국 복잡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마케팅은 흘러왔다. 이 현상을 정통 마케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7개의 알파벳, 바로 S-T-P(Segmentation-Targeting-Positioning)와 4P(Product, Place, Price, Promotion)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대표적 사례를 제시하고, 결론 형식으로 원인과 결과 및 향후의 방향으로서 세 가지 현상을 규정해보고자 한다.

 

 

 


Segmentation : 다양한 구분법의 등장

 


 

 

 

마케팅의 시작은 세분화(Segmentation)이다. 소규모지만 기반을 마련하는 틈새시장은 바로 그렇게 쪼개서 들어가며 만들어진다. 세분화는 보통 성별, 연령, 소득, 지역, 직업, 혼인 상태 등의 인구통계학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행해졌다.

 

 

그래서 비슷비슷한 성격을 가진 이들을 묶어서 고객 집단을 나누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그런 대규모 세그먼트의 유효성은 떨어졌다. “인터넷 세계에는 5천만 명으로 이루어진 한 개의 세그먼트가 아닌, 한 개인 안에 5천만개의 세그먼트가 존재한다.” 인터넷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95년에 하워드 레인골드(Howard Reingold)라는 문화평론가가 한 얘기이다. ‘백인일색(百人一色)’에서 ‘일인일색(一人一色)’을 거쳐서 ‘일인백색(一人百色)’의 시대가 되었다는 한국식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한 개인을 두고도, 무엇으로 세그먼트를 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동일한 여성이라도 출근, 업무, 퇴근 시간 때의 기분과 씀씀이가 다르다. 주말과 휴가 때는 또 다른 면모와 소비 습성을 보인다. 페이스북을 볼 때와 트윗을 올리거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는 타깃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로 연결된다.

 

 

 


Targeting : 간과되었던 목표 집단의 발굴과 색다른 접근 모색

 


 

 

 

 

미국의 조사회사인 A.C.닐슨에서 3년 전에 세대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디지털 기기 사용 행태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 베이비부머(Boomers) 1946~1964년생

• X세대(Gen X) 1965~1980년생

• 밀레니얼세대(Millennials) 1981~1995년생

• Z세대(Gen Z) 1996~2010년생

 

 

위의 집단 중에서 어떤 세대가 식사하며 스마트폰,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를 가장 자주 체크하며 집중을 못할까? 대개 밀레니얼세대나 Z세대라고 대답했는데, 실상은 베이비부머였다. 디지털 매체가 주력으로 떠오른 뒤 목표고객집단에서 뒤로 밀렸던 베이비부머를 전면으로 세우는 마케터가 많아졌다. 제품에 따라 매체에 따라 다른 목표고객집단이 설정되었고, 집행 방식도 달라졌다. 성분이 중시되었던 기초화장품이 유튜브를 매체로 활용할 때는 10대와 20대 초반으로 목표를 수정하고, ‘화장을 잘 먹게 한다’를 주요 속성으로 내세운다.

 

 

한국에서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많은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거나 주인공으로 한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 활동을 선보였다. 성소수자를 위한 광고를 따로 만드는 경우도 늘어났고, 빈민층을 주요 사업대상으로 삼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이전에는 흩어져 있던 이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술이 제공되고, 그 기술은 기업으로서도 그런 집단까지 커버할 수 있는 통로로 작용했다. 특정 집단을 겨냥한다는 자체가 포지셔닝을 위한 차별화 수단이 되기도 했다. 

 

 

 


Positioning : 사회적 의미와 서비스의 대두

 


 

 

 

한 마케팅 모임에서 한 친구가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대출신청자의 신용 평가를 하는 인공지능(AI)을 몇 군데 금융기관에 제공한다며, 그 메커니즘을 소개했다. 같은 시기에 디지털 관련 잡지 하나는 채용 과정 전반에 걸쳐 인공지능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소개했다. 최종 면접 인터뷰에서까지 지원자의 표정 변화를 분석하는 로봇이 실제의 당락을 결정하게끔 하는 기업들이 꽤 있다는 기사를 본 직후였다. 대출 심사나 인터뷰에서 예전의 관상쟁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AI는 특정 기업의 제품이 우월성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고 한다. 처리 용량이나 속도에서 앞서 나간다 하더라도 곧 모든 경쟁자들이 같은 수준으로 따라온다. 물리적 속성에 기초한 포지셔닝의 유효기간은 계속 짧아져왔다. 그래서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포지셔닝이 중요해졌다. 

 

 

미국의 아웃도어 의류 및 장비의 상위 10개 기업에서 수익성이나 성장률에서 파타고니아와 REI는 단연 돋보이는 두 기업이다. 환경이야 거의 모든 아웃도어 기업들이 자신들 포지셔닝의 기본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 두 기업은 창립자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포지셔닝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마케팅의 소위 4P에 반영시켰다. REI는 매출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미국의 추수감사절 휴일에 모든 점포의 문을 닫았다. 이를 통하여 환경 보존 이상으로 임직원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까지 강화시켰다. 단순한 제품의 속성 이상의 사회적 존재 의미까지 담아내서 기업의 방향을 제시하고,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이제 ‘포지셔닝’보다는 ‘디렉셔닝(Directioning)’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4P in Marketing의 변화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피터 드럭커(Peter Drucker)는 마케팅에서의 4P에 ‘고객 관점’을 반영하여 4C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제품(Product)은 고객에게 얼마만한 가치(Customer Value)를 주는가, 가격(Price)도 생산 원가 같은 제조업체 입장이 아닌, 소비자가 실제 얼마를 지불하고 그게 얼마만큼의 비용(Cost)으로 인식되는가를 따지라는 것이다. 프로모션(Promotion)도 가격을 얼마큼 깎아준다는 식에서 고객과의 소통(Communication)이라는 시각에서 기획하고 실행하며, 유통(Place)도 얼마나 고객들이 편하게(Convenience) 구입하고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라고 한 것이다. 너무 뻔한 소리이기도 하나, 이렇게 ‘4C’식으로 단순화하지 않으면 사실 사람들의 뼈에 박힌 행동이나 사고 구조를 바꾸기 힘들다. 마케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C’를 네 개 사용한 것은 같지만, 단어들을 디지털 세상에 맞게 바꾸었다. 코틀러 본인 표현으로는 ‘고객들이 참여하도록 진화시켰다’라고 하며 다음의 4C를 제시했다.

 

 

• Product → Co-creation(공동 창조) 고객이 참여한 상품 개발

• Price → Currency(통화) 역동적인 가격 정책. 순간순간 고객별 변화에 맞춤

• Place → Communal Activation(공동체 활성화) 개인-개인의 P2P 유통

• Promotion → Conversation(대화) 고객과의 쌍방향, 다원화 소통

 

 

4개의 P가 C로 바뀌면서 개발, 생산, 유통, 소비의 일직선 단계가 건너뛰거나 돌아가는 등 다양한 경로가 나타났다. 참여자들도 하나의 역할에 고정되지 않고, 어느 순간에는 소비자가 유통업자나 생산자의 모자를 쓰고 나타나게 되었다. 소외되거나 억압되어 있던 이들까지 다원화한 마케팅 노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0년간의, 그리고 다음 20년간도 계속 될 다양성의 큰 전개 방향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모든 것의 서비스화가 가속된다. 신규 진입자가 가치사슬에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음 세 가지를 말하는데, 이들 모두 서비스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교류 → 소비자와의 관계

• 아이디어의 제품화 및 시장 출시 속도의 증가 → 아이디어의 수용도

• 재고 비축이 아닌 주문 대응을 위한 제조 → 요구에 대한 반응 속도

 

 

소유에서 접속을 거쳐서 공유의 시대로 접어든다고 했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바로 멤버십이다. 이제 함께 서비스를 주고받는 멤버의 관계를 이전의 생산자, 유통업자, 소비자의 한정된 역할을 벗어나 서비스 관점에서 정의하고 개발시켜야 한다.

 

 

 

둘째,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인권 의식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소문처럼 뒷얘기로 어느 기업이 특정 후보를 민다고 수군거리던 시대는 지났다. 후보의 경제 관련 정견과 공약이 구체화되면서 기업의 의견을 직접 묻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랜 전통을 가진 기업일수록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쉽다. 올해 여성의 날을 즈음하여, 자신들의 대표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꾼 두 오랜 연륜을 가진 브랜드를 보라. 죠니 워커(Johnny Walker) 대신 제인 워커(Jane Walker), 그리고 KFC의 여성 샌더스 대령(Colonel Sanders)은 화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 시장을 넓히는 효과까지 가져왔다.

 

 

 

셋째, 식상한 표현이지만 경계는 사라지고 융합하여 거대해지거나 분열하며 쪼개지는 아메바적 진화는 계속 된다. 아마존은 책이라는 카테고리를 깼고,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 오프라인 상점까지, 쇼핑을 넘어 IT서비스로, 오래된 신문 비즈니스를 포함한 최신 오락물까지 콘텐츠 비즈니스까지 진출했다. 아마존이나 카카오톡처럼 다수의 소비자에 대한 접근 통로를 확보한 이들은 그를 발판으로 사업을 다양화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느 한 분야로 깊게 파고 들어 자신의 영역을 갖추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독립 서점, 필름 카메라, LP 등 소위 ‘아날로그의 반격’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아날로그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사실 디지털이 있기에 가능하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實證)을

똑똑하게 천천히 보았으니까!

 


 

 

 

‘현대식 교량’을 김수영 시인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시인은 무시무시한 속도의 변화와 혼돈 속에서도 다리 위에서 젊은이들과 대화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 마케팅에서의 다양화도 비슷한 과정을 겪어갈 것이다. 쪼개면서 결국은 합해지거나, 합해지면서 쪼개지는 참으로 희한한 과정과 결말이 되풀이된다. 그러면서 ‘적’이 ‘형제’로 변하는 것을 시인이 보았듯이, 소비자가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둔 마케팅으로 발전해 나가길 기원하고 그러리라 확신한다. 그것만이 사실 마케팅의 지속가능을 보장하는 길이다. 

 

 

 

박재항 / 하바스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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