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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더 유연하게, 리퀴드 소비

 

글 정지원 / 제이앤브랜드 대표. 아이덴티티 기획, 브랜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두루 경험한 후 다방면에서 마케팅 솔루션을 풀어낸다. 저서 <맥락을 팔아라> <어바웃 브랜딩> 외 다수.

 


 

얼마 전 직장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사진이 있었으니 바로 리모트워크 공간인 ‘맹그로브 고성’이 담긴 컷이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노트북을 켜고 그날의 일을 시작하는 모습, 바다에 비친 노을을 바라보며 그룹 요가를 하는 모습은 매일 같은 공간에서 틀에 박힌 패턴으로 일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최근 소비 트렌드의 중요한 가치는 ‘유연함’이다. ‘공유’ ‘구독’ 혹은 ‘렌탈’이라는 타이틀의 다양한 서비스는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보와 트렌드를 구독하고, 공기청정기와 침대를 렌탈하며, 자동차를 사는 대신 차량 공유 플랫폼을 활용하던 소비자들은 이제 ‘삶의 방식’을 구독하려 한다. 이처럼 소유가 아닌 공유를 중시하고 충성도보다 단기적 혜택에 따라 움직이는 유동적인 소비경향을 ‘리퀴드(Liquid) 소비’라 부른다.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한 소비자의 마음을 따라가며 이들의 취향과 다음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이제 모든 기업의 숙제가 됐다. 우리의 소비는 얼마나 유연해지고 있을까? 브랜드는 리퀴드 소비를 즐기는 소비자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맹그로브 고성. 리모트 워커를 위해 워크 라운지, 개인 공간, 명상룸 등이 준비돼 있다. / 출처 mangrove.city

 

공유경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리퀴드 소비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발전해 온 공유경제, 플랫폼, 구독경제를 통해 서서히 자리 잡았다. 소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은 MZ세대 주택 보유 비율의 하락, 운전면허증 취득 비율 감소 등에서도 선명하게 파악된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가치소비는 다른 한 방향으로의 리퀴드 소비를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특히 MZ세대가 지향하는 탈물질주의 시대에는 제품이 행복을 상징하지 않는다. 소유 자체가 주는 기쁨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이들은 무엇을 소비할까? 과거 우리는 이를 ‘경험’이라 말했다. 제품이나 소유보다 경험을 택한다고.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경험을 총체화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잘 기획된 공간에서 브랜드의 철학과 감도를 충분히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전히 중요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경험의 주제가 ‘라이프스타일’로 점차 집중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제 팔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다.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바람직한 가치관, 완성도 높은 라이프스타일, 진짜를 알아보는 안목, 물건의 감도를 구별하고 누릴 줄 아는 취향만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 새로운 경험이 되거나, 취향에 맞거나, 내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해주거나, 이슈가 되는 품목은 빠르게 확산되고 소비된다.

 

발 빠른 대응보다 중요한 강점설계와 에코시스템

그렇다면 리퀴드 소비에 대응하는 브랜드는 그저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이른바 ‘숏케팅’에 몰두해야 할까? 소비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그 방향도 모호할 때 중요한 것은 강점 설계다. 브랜드 충성도가 낮은 시대에도 소비자의 선택에 있어 의미 있는 자리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브랜드가 강점을 보유하고 있을 때다.

 

(좌) 충성 고객의 새로운 상품군 동반 구매를 노리는 마켓컬리는 뷰티컬리로 카테고리를 강화했다 (우) 친환경, 유기농 식품 전문 플랫폼 오아시스는 재구매율 80~90%에 달하는 높은 고객 충성도를 유지한다. / 출처 kurly.com, oasis.co.kr

 

마켓컬리를 선호했지만 난각번호 1번 계란이 저렴한 오아시스를 발견한 순간 구매의 중심과 루틴이 흔들릴 수 있다. 이럴 때 변심한 고객을 다시 돌릴 수 있는 것 역시 신선제품뿐 아니라 뷰티까지 확장된 컬리만의 강점이다. 과거에는 규모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고객 의사 결정의 에코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의 싸움이다. 이를 위해 브랜드와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연결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유기적 트래픽을 모아야 한다. 소비자의 의사결정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에 의해 이뤄진다. 단지 규모가 큰 매체, 영향력이 지대한 인물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의외의 커뮤니티, 인물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변화된 에코시스템에서는 브랜드뿐 아니라 이와 연계된 다른 플레이어들이 중요하고 이들이 뭘 하느냐에 따라 내 고객도 달라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확실한 경험과 리텐션의 이유를 제공하라

무브먼트랩은 감각적인 공간 운영을 통해 가구 구독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다. 총 4개의 플래그십 매장 중 부산, 의왕점은 구매와 상관없이 놀러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6개월마다 새로운 컨셉의 체험형 전시를 선보인다. 서비스의 핵심은 다양한 디자인의 가구, 소품, 조명이다. 브랜드는 디자인 플레이어들과 단단히 연계한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들이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을 최상의 환경에서 전시하고 기획하며 소비자와 연결한다.

 

하나의 컨셉을 다수의 브랜드가 해석한 전시를 6개월간 진행하고 이를 시즌 에디션 제품에 반영해 판매하는 무브먼트랩 / 출처 movementlab.kr

 

무브먼트랩은 유료 멤버십으로 운영하며 전체 매출의 90%가 멤버십에서 나온다. 매달 1만원의 비용을 내는 소비자들은 지속적으로 테마가 바뀌는 순환형 쇼루밍 매장에서 정보를 얻고 직접 경험하며, 구매한 제품의 케어를 받는다. 가구 클리닝 서비스는 소비자 입장에서 늘 필요하지만 자발적으로 하기는 어려워 만족도가 높고 향후 강력한 리텐션이 될 수 있는 요소다. 이처럼 유료 멤버십이 지속된다는 점은 이들의 전시 정보나 퀄리티가 꾸준히 소비자에게 방문할만한 가치와 만족을 제공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소비자들이 수시로 제품을 갈아타고, 유행 주기가 짧고, 브랜드 충성도는 낮은 리퀴드 소비의 특성을 늘어놓고 보면 브랜드 입장에서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허니버터칩이나 포켓몬빵이 공전의 히트상품이 되어 품귀현상이 나타났을 때도 브랜드는 섣불리 공장라인을 증설하지 않았다. 올해의 인기가 내년에도 지속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유명 멕시칸 음식점 치폴레(Chipotle)는 BTS 정국이 유튜브에서 치콜레로 잘못 발음하고 이슈가 되자 바로 트위터 계정명을 치콜레(Chicotle)로 바꿨다. 농심은 외국인들이 너구리를 거꾸로 RtA로 읽자 실제 RtA라는 이름으로 라면을 출시했다.

 

(좌) 트위터 계정 이름을 치콜레로 바꾼 미국 멕시칸 음식 체인 치폴레 (우) 외국인들의 별칭에 따라 RtA 제품을 출시한 농심 / 출처 @ChipotleTweets, 농심 홈페이지

 

빠르고 기상천외한 브랜드의 대응으로 소비자에게 짧은 순간 재미를 주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리퀴드 소비가 보여주는 속도감에 놀라 브랜드의 강점을 간과하거나 대응에만 급급해 촘촘히 갖춰야 할 에코시스템을 뒷전에 놓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자. 확실한 경험을 주고 있는지, 다시 구매할 리텐션의 이유를 주고 있는지 돌아볼 것, 그것이 브랜드의 일이다. 맹그로브의 오션뷰 코워킹 공간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기존의 일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제안을 하되, 리모트 워크를 완성하는 다양한 브랜드와 에코시스템을 이루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본질적 니즈를 충족시키는 확실한 경험의 한 장면을 제시하는 것. 이를 충족시킨 제안은 리퀴드하지만 결코 리퀴드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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