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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너는 내 반려가전

 

글 민용준 / 영화&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반려자, 반려묘, 반려식물 등 ‘짝이 되는 동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반려’는 인간과 유효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를 규정할 때 동원되곤 했다. 그리고 이제 반려가전의 시대다. 응? 소리가 절로 나며 새삼 디스토피아 같은 시대를 사는 기분을 느끼는 이도 있겠지만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달고 다니는 지금, 반려가전이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을 뿐 실생활에 존재하는 개념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1인 가구 트렌드와 전자기기

지난 2022년 9월에 발간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기의 대중화 가능성’에 관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인구노령화,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라는 사회 트렌드 하에서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기는 노령층뿐만 아니라 독신 가구에서 반려가전으로서의 자리매김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명시돼 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 기반의 스피커를 비롯한 AI 기기가 1인 가구의 일상에서 반려가전이라는 인식으로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바야흐로 1인 가구의 시대다.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40.3%에 달하며 2인 가구 비율도 23.9%로 2인 이하로 구성된 가구 수가 전체의 절반을 상회한다(출처 2022 행정안전통계연보). 세대별로 봤을 때 1인 가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건 18.6%를 차지하는 70대이며 60대와 50대 그리고 30대와 2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1인 가구에서 우위를 보이는 세대가 노인과 청년 세대로 분류되는 건 출생률 저하와 인구 노령화 현상이 가중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화, 돌봄 기능을 탑재한 디바이스

이렇듯 동거인도 반려자도 없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며 이에 어울리는 서비스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듯 음성인식 AI 스피커에게 말을 걸어보는 경험도 혼자 사는 이들에게 보다 익숙하다. 흥미로운 건 이런 경험이 AI 기기에 상대적으로 익숙할 것으로 추정되는 청년 세대보다 노년 세대에서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 따르면 음성인식 AI 기기 이용 빈도를 묻는 질문에서 ‘자주 이용한다’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은 건 70대 이상 세대로 50% 이상이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30대 이후 세대부터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음성인식 AI 기기 이용 빈도가 더욱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AI 기기가 유용한 반려기기로서 자연스럽게 삶에 틈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 업계에서도 이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돌봄 기능이 탑재된 AI 기기가 적지 않게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로봇 ‘니코보’. 안거나 만지면 반응하며 음성으로 감정 표현 등 간단한 소통을 한다. 잠꼬대, 방귀, 눈 피하기 등으로 주인을 웃긴다.

 

코웨이에서 출시한 아이콘2 정수기는 48시간 이상 쓰지 않으면 자동으로 이상 감지 신호를 스마트폰 전용 앱으로 전송하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에코백스에서 출시한 로봇청소기 디봇 T10옴니 역시 기기의 카메라를 스마트폰 앱으로 연결해 집안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하는 위치로 기기를 움직일 수 있는 무선조종 기능도 제공한다. 헬스케어 디바이스 기업 텐마인즈에서 출시한 스마트베개 모션 필로우는 사용자의 수면 상태와 건강을 체크한 데이터를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격적인 반려 대상으로 진화

물론 반려가전의 쓸모를 1인 가구의 문제 해결 용도로만 국한해 규정할 필요는 없다. 나 혼자 사는 1인이라면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다. OTT를 비롯한 홈 엔터테인먼트와 연계된 산업이 빠르게 발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프라이빗 스크린을 표방하는 LG 스탠바이미가 27인치에 불과한 크기에 비해 90만원의 가격대임에도 젊은 세대의 구매욕을 자극한 건 어디서든 시청이 용이한 스마트 디바이스이기 때문이다. 장소 제약 없이 각도 조절이 용이한 거치대가 달린 TV는 기존의 시장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장점이다. 그야말로 젊은 세대를 위한 반려가전인 셈이다.

 

영화 <그녀(Her)> 속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대화하는 주인공 테오도르 / 출처 영화 캡처

 

이렇듯 반려가전은 일상적인 생활 용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챗GPT를 비롯한 대화형 AI 서비스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지금, 기술은 단지 인간의 편의를 해결하고 일상적 위험을 보조하는 기술적 반려 수준을 넘어 인격적인 반려 대상으로서 기능을 발휘할 가능성도 높다. 최근 미국에서는 유명한 여성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목소리, 버릇, 성격 등을 대화형 AI 서비스에 학습시킨 뒤 이를 토대로 만든 음성 챗봇으로 유료 서비스를 출시했다. 5일 만에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으며 월 66억원 이상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그녀>에서 AI 음성 서비스와 사랑에 빠진 남자들의 시대가 이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이 인간을 반려하는 시대는 오는 것이 아니다. 반려가전과 함께하는 삶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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