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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현금 없는 세상

 

글 길진세 / 국내 대형 카드사 금융전략담당, 한국금융연수원 강사. <왜 지금 핀테크인가> 공저 외.

 


 

지난 3월 21일, 애플페이가 현대카드와 제휴해 국내에 출시됐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처음 애플페이가 발표된 게 8년 전인 2014년임을 감안하면 꽤 늦은 시작이다. 늘 IT 선진국임을 당당히 내세우던 우리나라이건만 어쩌다가 이렇게 늦어진 걸까? 많은 이들이 수수료 문제와 결제 인프라를 주요 원인으로 찾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디지털 월렛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다.

 

수수료와 결제 인프라의 문제

애플은 애플페이를 도입하는 국가의 카드사에서 기존과는 별도의 수수료를 추가로 받아왔다. 애플페이 덕에 카드사는 실물 카드 제작을 줄일 수 있으니 절약되는 만큼 받겠다는 취지다. 미국은 0.15%, 중국은 0.03%, 이스라엘은 0.05%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여타 페이와 제휴할 때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던 국내 카드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악화시키면서까지 도입해야 할지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인프라 부문에는 NFC 단말기 보급 문제가 있다. 애플페이는 NFC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NFC는 Near Field Communication의 약자로 비접촉식 데이터 전송규격을 말한다. 보통 우리가 신용카드 결제를 할 때 과거에는 긁었고(카드 뒷면의 마그네틱 띠를 리더기에 읽히는 행위) 최근에는 IC칩 부분을 카드 결제기에 삽입한다.

이러한 기존의 단말기에서 애플페이 결제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NFC를 인식하는 싸인패드를 추가하고 POS의 S/W를 업데이트하면 가능하지만 5~15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국내 신용카드 가맹점은 대략 300만 개 전후로 추정되는데 이들 중 NFC 단말기의 보급률은 10% 정도다. 애플페이 이전에 여러 카드사에서 추진했던 NFC 모바일 카드가 발전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현대카드가 자체 비용을 들여 단말기 보급을 진행하고 있지만 얼마나 확대할 수 있을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출처 apple.com

 

애플페이의 등장으로 삼성페이에도 변화가 생겼다. 삼성전자는 2016년 갤럭시 S6에 삼성페이를 도입한 이후 개별광고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애플페이 출시가 가까워오자 작년 겨울부터 삼성페이 광고를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광고에서 결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권이나 학생증 등 실생활에 밀접한 기능까지 보여주는 것이다. 또 국내 페이사업의 경쟁자일 수도 있는 네이버페이와 제휴를 맺어 지난 3월 31일 이후 갤럭시 폰에서는 네이버페이 앱을 열고 삼성페이 결제가 가능하다.

 

출처 samsung.com

 

디지털 월렛을 향한 경쟁

삼성전자의 변화는 애플페이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결제사업이 향후 디지털 월렛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한 견제 심리 또한 크게 작용한다. 사전적으로 디지털 월렛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이 디지털로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말한다. 개인 사용자는 디지털 월렛을 마치 실제 지갑처럼 활용할 수 있다. 지갑 안에 신분증, 신용카드, 현금, 아파트 출입키 등 다양한 것들을 넣어두듯 디지털 월렛 또한 전자적인 방식으로 이를 담아둘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에 탑재된 NFC로 교통카드 기능을 활용하며 행정안전부에서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앱으로 출시한 바 있다. 디지털 월렛을 구성하는 요소는 개별 사업자들에 의해 빠르게 구현되고 있으며 이를 통합한 월렛 사업자로서의 등극이 관건인 상황이다.

 

국내외로 빠르게 확대

사실 디지털 월렛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SK플래닛에서 출시한 시럽(Syrup), KT의 클립(Clip)을 들어봤을 것이다. 클립은 2022년 6월 서비스를 종료했는데 이전에는 올레마이월렛(olleh my wallet), 모카(Moc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2011~2012년은 이러한 개념이 빠르게 퍼져나간 시기로 통신사가 주도한 디지털 월렛 앱은 한때 스마트폰 안에 선탑재(Pre-loading)된 후 출시돼 많은 사용자를 모을 수 있었다. 애플 월렛이 출시된 시기도 이 즈음이다. 아이폰으로 국내 생태계가 급변하며 통신사에서 먼저 디지털 월렛의 중요성을 인지한 것이다.

이후 핀테크/빅테크 대형 사업자들이 자연스럽게 디지털 월렛 영역을 파고들었다. 2천만 명 이상의 활성사용자를 확보한 토스는 앱 내에 본인인증 및 결제 기능을 탑재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도 본인인증, 신용카드 영수증 정리, 공과금 고지서 관리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우리가 지갑에 욱여넣고 다니던 것들이 디지털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해외는 어떨까. 전통의 강자인 애플페이와 페이팔이 굳건한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지난 1월 미국 대형 은행 7곳이 공동으로 디지털 월렛 출시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올해 하반기에 출시 예정이며 서비스 앱은 젤(Zelle)이다. 이 앱은 미국은행협회가 소유한 것으로 은행 간 송금을 수수료 없이 빠르게 할 수 있어 2021년 3월 기준 1억 5천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각 은행이 보유한 신용/체크카드 결제 기능을 추가한 후 신분증 등 다양한 서비스를 더할 예정이다.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셀프 커스터디(Self Custody) 서비스도 디지털 월렛의 새로운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 대형 거래소인 빗썸, 두나무도 자체 지갑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가상자산을 편리하게 타인의 지갑으로 전송하고, 구매한 NFT를 보관하는 기능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디지털 월렛은 전통적인 자산을 넘어 빠르게 확대되는 중이다.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국내와 해외의 디지털 월렛 전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송금이나 결제와 같이 앱의 활성화 빈도가 높은 킬러 서비스를 성공시킨다. ▶ 송금과 결제는 필연적으로 본인인증이라는 과정을 수반하므로 디지털 월렛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기에 용이하다. 이렇게 월렛을 사용하면 고객은 점차 락인(Lock-in)되며 이로 인해 디지털 월렛 사용처도 늘어나게 된다.

애플페이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건 아이폰의 영향력을 애플페이로 쉽게 가져왔기 때문이다. 아이폰에는 NFC 모듈이 내장돼 있으나 애플은 앱 개발자들에게 이 영역을 공개하지 않는다. 아이폰에서의 NFC 결제는 애플만이 하겠다는 것이다. 애플페이가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애플월렛까지 커진다. 애플은 이렇게 강력한 생태계 로드맵을 설계하고 추진 중이다.

애플페이의 국내 출시로 인해 2023년에는 본격적으로 삼성과 애플의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제를 시작으로 양사가 디지털 월렛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지, 그리고 같은 시장을 노리는 여러 빅테크/핀테크 사업자들은 어떻게 대응할지 흥미롭게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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