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지원 / 제이앤브랜드 대표. 아이덴티티 기획, 브랜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두루 경험한 후 다방면에서 마케팅 솔루션을 풀어낸다. 저서 <뉴그레이> <맥락을 팔아라> <어바웃 브랜딩> 외 다수.
‘우아한 가난의 세대’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로 불리는 MZ에 대한 표현 중 하나다. 이는 집을 사는 것은 미루지만 호캉스는 포기할 수 없는 세대, 결혼은 생각 없지만 나의 취향을 오롯이 담은 작은 월세방과 값비싼 빈티지 의자는 포기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소비 특성을 표현한다. 이러한 2030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해온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가 고물가, 고금리 시대를 겪으며 ‘하나로 충분하다’는 요노(YONO:You Only Need One)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요노는 선명했던 욜로의 개념을 살짝 비틀면서 젊은 세대의 변화된 소비 트렌드를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고물가, 고금리 시대가 되며 이를 버티기 힘든 젊은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24년 스타벅스의 1분기 실적은 전년도에 비해 3% 감소했고 중국에서의 매출은 11% 줄었다. 반면 월마트는 6% 증가한 1,615억의 매출을 기록했다. 외식 건수는 9% 줄고 간편식 소비가 21% 늘었다. 호캉스와 오마카세, 여행, 외식, 취미를 즐기며 올리던 SNS 대신 5년 입은 재킷을 인증하고 다이소 득템 소비를 자랑한다.
타이트하게 소비하는 일상품
요노 트렌드가 부상하며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업종은 유통과 식품이다. 다이소는 3천원짜리 피부관리 앰플을 판매해 초대박을 터뜨리고 뷰티 분야마저도 장악한다. 따끔따끔 바늘이 찌르는 것 같은 효과가 체감된다는 입소문은 빠른 품절과 품귀현상을 불러왔다. 홈플러스의 천원짜리 맥주 ‘타이탄’, 세븐일레븐의 천원 맥주 ‘버지미스터’와 ‘프라가’ 등도 초도 물량 수십만 캔을 완판하는 성과를 올렸다. CU는 자체 PB 상품 ‘HEYROO 두부 득템’을 출시해 기존 가격보다 최대 45% 저렴한 천원에 판매하며 젊은 층의 호응을 얻어 득템 시리즈를 확장 중이다.
젊은 층은 일상품에 있어 타이트한 소비를 하지만 가장 저렴한 제품을 구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격은 낮지만 새로운 기획, 제조사가 분명해 품질에 걱정 없는 제품을 선별해 구매한다. ‘천원대’라는 파괴적 가격이 주는 희열, 희소한 기회에 집중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최대 고관여 제품인 피부 관리를 단돈 3천원에 한다는 그 희소한 경험이 주는 재미를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건강 아이템인 두부도 적정한 용량에 한 번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천원짜리 간편함이 선택의 요인이 된다.
실용적 가격에 경험을 더한 목욕탕
도쿄에 등장한 소위 ‘목욕탕 부동산’이 젊은 세대에게 통했다. 목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지만 대중목욕탕은 점차 줄어들어 1960년대와 비교하면 10분의 1 정도만 남게 됐다. 목욕탕 문화를 사랑하는 젊은 세대인 창업자는 ‘도쿄 목욕탕(TOKYO SENTO)’이라는 미디어를 운영하다가 사라져가는 목욕탕을 지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제안하는 부동산의 조건은 꽤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도쿄 내 집들 중 목욕탕이 없는 저렴한 집을 고르고 그 집에서 다니게 될 목욕탕을 함께 추천하는 것이다. 목욕문화를 알리는 활동도 여전해서 이들은 메타배스(Meta Bath)를 운영해 기억할 가치가 있는 과거의 목욕탕 건축물을 3D 디지털 데이터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거의 절반의 파격적인 월세 조건에 사라져가는 목욕문화를 내 집 앞에서 누리는 경험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이 선택은 나쁘지 않다. 이제 도심에서는 거의 사라져가는 대중목욕탕을 살린다는 명분까지 챙기면서 말이다. 도쿄 도심에서 찾기 힘든 실용적 가격마저도 희소한 경험이 되는 셈인데 여기에 색다른 체험이 붙는다면 그 효용성은 배가 된다.
하나를 사도 잃지 않는 ‘나의 존재감’
하나면 충분하다(You Only Need One)는 트렌드는 단순히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의미는 아니다. 불필요한 제품이 예쁘거나 유행이라는 이유로 구매하기보다 꼭 필요하거나 삶의 질을 확실하게 향상시킬 물건만을 엄선해 구입하는 행태를 말한다. 우리는 입고, 먹고, 보는 것이 곧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소비하지 않는 것’, ‘신중하게 소비하는 것’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 역시 개성을 증명하는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요노(YONO)는 소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큰 고민 없이 사들였던 소비에 대한 단절을 의미한다. 구매가 필수불가결인 삶 속에서 소비를 부추기는 다양한 유혹에 선을 그으며 불매가 아닌 ‘필요’에 초점을 맞춘다. 반드시 필요한 것만 탐색하고, 환경에 더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꼼꼼한 과정에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어쩌면 요노는 불황을 통과하는 젊은 세대의 ‘실용성’이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가치소비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치소비는 MZ세대의 소비성향을 나타내는 중요한 키워드다. 가치소비는 합리성과 가치관이라는 두 가지 뜻을 함축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과감히 소비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극단적으로 줄인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면 선택해야 한다. 더더욱 취향의 잣대가 견고해진다. 남들의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에 얼마를 쓸 것인가는 오롯이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게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한다. 가치소비는 한정된 자원으로 만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된다.
그러나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 나타나는 요노 트렌드를 2030 세대의 지배적인 소비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세대 간 소비패턴에 유연성이 있듯 브랜드도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요노는 불황의 시대를 사는 지금 2030이 선택한 소비패턴 중 하나일 뿐이다. 이들의 소비는 필요와 더불어 의미, 그것을 원하는 욕망 그 자체에 있다. 하다못해 물컵, 볼펜 하나라도 말이다. 가격이 높든 낮든 이들의 소비에는 늘 FOMO(Fear Of Missing Out: 나의 존재감)가 개입된다. 언제나 생존 밖으로 넘치는 의미 하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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