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병성 / 공연 칼럼니스트.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 역임, 강연과 기고 등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 <뮤지컬 탐독>.
캐나다 퀘벡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이들은 우리에게 낯선 공연 단체는 아니다. 2007년 대표작 <퀴담>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 <알레그리아>, <바레카이>, <마이클 잭슨의 임모털>, <쿠자>, <뉴 알레그리아> 등이 꾸준히 한국 무대를 찾았다. 지난해에는 멕시코의 전설과 신화를 바탕으로 한 <루치아>가 서울과 부산에서 공연돼 큰 사랑을 받았다.
태양의 서커스 내한공연은 움직이는 공연장이라 불리는 초현대적 텐트극장인 그랑샤피토(Grand Chapiteau)에서 진행되는데 알록달록한 공연장 자체가 이슈가 되며 시각적 즐거움을 전한다. 서커스의 역사와 함께했던 천막극장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서커스의 한계를 넘어선 태양의 서커스는 뉴서커스의 대표적인 단체로 현재까지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을 이어가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
거리 곡예에서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태양의 서커스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젊은 예술가들은 코끼리나 사자, 호랑이 등 동물을 이용한 쇼를 버리고 퍼포머의 신체적 기술로 극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서커스를 선보이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등장한 것이 ‘누보 서커스(Nouveau Cirque)’다. 캐나다에서 거리극을 하던 젊은 예술가였던 기 랄리베르테(Guy Laliberté)는 누보 서커스에서 영감을 받아 동료 곡예사를 모아 ‘하이힐 클럽’을 만들었다. 이들의 공연이 주목받자 퀘벡시의 지원을 받아 정식으로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1984년 그는 질 스테크루아, 기 카롱 등과 함께 새로운 서커스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태양의 서커스를 설립했다.
이렇게 시작한 태양의 서커스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20년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44개 작품을 보유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간 수익이 10억 달러(약 1조 3천억 원)를 넘어섰으며 90여 개국, 1,450여 개 도시에서 누적 관람객 3억 6천5백만 명이 태양의 서커스를 관람했다.
이들은 단순히 동물을 배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커스에 연극적이고 오페라적인 요소를 가미해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켰다. 기예의 나열을 넘어서 이를 엮어내는 이야기가 존재했으며, 이야기 속에서 의상, 조명, 음악이 가미된 퍼포먼스는 놀라움을 주는 동시에 예술적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적 있는 <퀴담>은 초창기 태양의 서커스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퀴담’은 익명의 행인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작품 속 얼굴 없는 남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자기 세계에만 빠져있는 부모 밑에서 방치된 소녀 조는 얼굴 없는 남자 퀴담을 따라 미지의 세계를 여행한다. 총천연색 의상과 분장을 한 캐릭터들이 조의 여행길을 함께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예는 이야기와 맞물려 긴장과 공포 대신 미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
태양의 서커스 작품들은 뉴서커스, 아트서커스 등으로 정의되지만 이를 넘어서 작품 하나하나가 창의적이며 독창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텐트극장인 그랑샤피토에서 투어 가능한 공연 외에도 라스베이거스나 디즈니 리조트 등에서 상설 공연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공연이 대형 극장 안으로 들어오며 다채로운 무대기술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내 전용극장에서 공연한 <오(O)>는 500만 리터로 가득 찬 물의 세상을 만든다. 18미터 높이 천장에서 퍼포머가 수직으로 떨어지고 아름다운 분장을 한 캐릭터가 싱크로나이즈 퍼포먼스를 선보이는가 하면 물 위를 비행하는 배에서 공중고개를 펼친다. MGM 그랜드 호텔에서 초연한 <카(KA)>는 마치 뮤지컬처럼 구성된 공연으로 같은 운명을 타고난 쌍둥이 남매의 모험을 다룬다. 스토리가 명확한 것도 특징이지만 끊임없이 펼쳐지는 첨단 기술이 압도적이다. 175톤 무게의 무대가 회전하는가 하면 거대한 무대가 수직으로 서고 그 위에서 추격전을 벌인다. 이들은 기존 뉴서커스의 전통을 계승하며 막대한 기술과 인력을 투입해 과감한 실험을 시도해오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 수석 부사장인 볼링브로크는 자신들만의 특징을 ‘분야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들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서커스를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작품으로 완성해가고 있다.
고객 경험 포트폴리오의 확장
태양의 서커스는 하나의 브랜드로 지평을 넓혀가기 위해 초기에는 전 세계의 신화와 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협업을 선택했다. 비틀즈의 음악을 기예적 요소로 시각화한 <러브>나 마이클 잭슨을 소재로 한 <원>, <마이클 잭슨 임모털> 그리고 축구 스타인 메시를 모델로 <메시 10>을 태양의 서커스 작품으로 제작했다. 인기 영화 <아바타>를 무대로 옮긴 <토룩(Toruk)>은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미디어 파사드 기법으로 대자연을 구현해 관객을 신화적 공간으로 초대했다. 또 디즈니와 협업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하는 서커스 <드론 투 라이프(Drawn to Life)>를 선보였다.
자사가 보유한 IP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진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의 실사 버전을 만들 듯 태양의 서커스는 공연을 영화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인기작 <오>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로 만든 것이다. 엔데믹 이후에는 더욱 자사의 IP를 활용해 협업을 펼치고 가치를 재창출하는 작업에 힘쓰는 모습이다.
올해 8월에는 관객 몰입형·참여형 이머시브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코스엠(COSM)과 자사의 대표작인 <오>를 가상 체험할 수 있는 이머시브 전용관을 개관해 선보인다.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는 ‘태양의 서커스 타이쿤’을 공개해 게이머들이 자신만의 서커스 세계를 구축하고 태양의 서커스 그룹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키드슈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콜름 딜레인(Colm Dillane)과 협업해 파리 패션위크에서 서커스를 결합한 패션쇼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인 맥캘란 창립 200주년 런칭쇼 구성, 플라워샵 퍼퓸 컴퍼니와 합작해 향수 로(L'eau de parfum)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브랜드 경험 포트폴리오를 확장해가고 있다.
거리극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 감동을 전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거듭난 태양의 서커스. 이들은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로 발전하기 위해 도달 범위를 확장하고, 새로운 팬들을 유입해 참여를 유도하는 매력적인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한계 없는 상상력을 펼치는 이들의 공연처럼 한층 창의적인 브랜드로서의 태양의 서커스를 눈여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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