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GGING/d-Issue

맛잘알 Z세대는 취향을 먹는다

 

글 장새별 / 매거진 <바앤다이닝>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F&B 컨텐츠 컴퍼니 스타앤비트 리더, 프리랜스 에디터로 활동한다.

 


 

영화 <소공녀> 속 일당 4만 5천원에도 위스키 한 잔과 담배는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 미소. 극단적으로 표현된 영화적 사례이지만,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향한 소비를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사회생활 초읽기에 들어 ‘아직’ 지갑은 얇지만 취향은 두툼한 Z세대의 영수증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미래 잠재 소비권력의 관심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경험과 가치를 더해가는 식문화

자신의 취향이나 경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F&B 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소 10만원을 훌쩍 넘는 파인다이닝, 스시와 한우 오마카세를 즐기는 연령층이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이 반증이다. ‘어린 친구들이 대체 돈이 어디서 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머릿속으로 셈해보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Z세대가 아닌 셈. 맵시 있게 꾸려진 공간, 맛과 스토리가 존재하는 음식, 최상의 접객을 갖춘 파인다이닝은 일상 속 럭셔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통한다.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각적인 경험을 사는 것이다.

 

(위) 전 세계 네 번째 구찌 오스테리아가 구찌 가옥 6층에 입점했다. 한국과 이탈리아를 더해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보인다는 컨셉이다. (아래) 지미추의 시그니처 컬러로 가득한 추카페 서울. 스페셜 디저트와 음료를 판매하며 한정 기간 동안 운영된다. / 출처 gucciosteria.com, @gucciosteria, @jimmychoo

 

최근 명품 브랜드의 다이닝 오픈 러시가 이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찌 오스테리아>, 지미추의 <추카페 서울> 등은 개점과 동시에 연이은 온라인 예약 마감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다이닝을 매개로 부티크의 문턱을 낮추고, 아직 구매력이 높지 않은 Z세대는 브랜드가 전하는 명품의 가치를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인 것. 여기에 팬시한 SNS 이미지 샷 촬영은 덤이다.

 

더 새롭게, 더 눈에 띄게

식사에 큰돈을 지출한 만큼 나머지 일상생활을 포기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Z세대에게 포기는 없다. 선택과 집중이 있을 뿐. 한 끼 식사를 기준으로 보면 파인다이닝과 대척점에 있는 편의점에서도 그들만의 취향을 찾아낸다. 음료와 스낵을 막론하고 신제품을 시도하는데 거침이 없다. 맛없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취향이 가난해지는 건 두고 볼 수 없으니까. SNS에는 편의점 신상을 리뷰하는 다수의 계정이 생성돼 있고, 해시태그 #편의점신상 검색 결과 게시물만 16.5만개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대표되던 식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

두 가지 이상의 제품으로 자기만의 편의점 레시피를 개발하는 2차 컨텐츠 생성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기기도 한다. 발 빠른 식품 유통업계는 이런 레시피를 활용한 모디슈머(변경 modify과 소비자 consumer를 합친 신조어) 제품을 선보인다. 국순당과 칠성사이다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인 ‘칠성막사’, 컵라면 볶음밥 레시피를 제품화한 오뚜기의 ‘진라면 볶음밥’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국순당 막걸리의 부드러움과 칠성사이다의 청량함을 담은 협업 제품 <칠성막사>, SNS에서 인기 있는 레시피를 제품화한 오뚜기 <진라면 볶음밥> / 출처 @chil_label, @ottogi_daily

 

 

GS25는 아예 가상인물인 ‘Z세대 직장인 김네넵’의 세계관을 반영한 팝업 매장 ‘갓생기획실’을 만들었으며, 지난 11월 11일에는 자체 브랜드 및 단독 운영 상품을 중심으로 구성한 플래그십 스토어 ‘도어투성수’를 오픈했다. 레시피뿐 아니라 온라인상에 펼쳐놓은 비대면 의견을 오프라인 스킨십으로 구현하는 모디슈머 제품은 Z세대의 취향을 저격할 뿐 아니라 내 의견이 제품에 반영된다는 소비자의 주체적 충성도를 형성해주기도 한다.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Z세대가 얼마나 취향에 진심인지 건강과 연결 지어보면 더욱 선명하게 와닿는다. 이전까지 건강을 지키는 건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밀레니얼 세대까지는 제로콜라(주로 다이어트 콜라라고 불렀던)나 저칼로리 맥주를 마시면 “그럴 거면 그냥 콜라를 마시지 마라” “누가 술을 칼로리 따지며 마시냐”는 주변의 비아냥을 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지키면서 놀 줄도 아는 Z세대에게 제로 알코올, 제로 칼로리 음료는 취향에 따른 선택이다.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음료를 즐긴다는 신조어 ‘소버 큐리어스’는 이 세대가 유행시킨 생활양식이다. 이에 따라 ‘제로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 제로’와 ‘펩시 제로슈거’에 이어 올해 과일향 탄산음료 ‘탐스 제로’ 3종, 에너지 음료 소비가 높은 세대를 겨냥한 ‘핫식스 더 킹 제로’ 등을 연이어 출시했다. 눈 감았다 뜨면 새로운 논알코올 맥주가 출시되고 와인 역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제로 음료’ 하면 콜라와 사이다가 전부였던 시대를 지나 취향주의자 Z세대에게 알맞은 선택권이 주어지고 있다.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Z세대에게는 다양한 선택권이 필요하다. 음료시장은 이를 위해 논알코올 맥주, 디카페인 커피, 제로슈거 에너지 음료 등을 출시하고 있다. / 출처 @chil_label, @lottechilsung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로드숍에서는 더욱 체감한다는 반응이다. 강남의 바에서는 논알코올 매출 비율이 20% 정도를 차지한다는 말이 들린다. 술이 주가 되는 공간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더 재미있는 건, 본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건강상의 이유로 마시지 않지만 공간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하는 층이 많다는 것. 소위 맛 좀 아는 취향주의자들인 것이다. 기존의 논알코올 칵테일이 그저 재료에서 술만 제외시킨 것이라면, 이제 서울 유수의 바에서 찻잎이나 약재를 가볍게 우리거나 건조, 수비드하는 등 갖가지 방식으로 알코올의 바디감을 구현하고 허브, 과일로 만든 시럽 등으로 복합적인 풍미를 구현하는 등 논알코올 칵테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흔히 Z세대를 두고 ‘남과는 다른 나’를 추구하는 세대라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남보다 더 눈에 띄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존중이 깔려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고, 남이 좋아하는 것도 존중하는 ‘취향 존중’을 넘어 싫어하는 것도 존중하는 ‘싫존’의 시대를 이끄는 세대. Z세대의 영수증에 취향이 고스란히 담길 수 있는 이유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