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우성 / 시인, 컨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지난 금요일 저녁,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MBTI 어떻게 나왔어요?” 왜 당연히 해봤을 거라고 생각하지? 난 안 했다.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다. “저는 그런 거 안 해요. MBTI 따위가 어떻게 나를 유형화시킬 수 있죠? 내가 어떤 사람인진 내가 정해요. 엄마랑. 음… 여자친구도.” 사람들이 웃었다. 와, 대단하다, 이런 느낌으로. 하지만 나를 빼곤 전부 MBTI를 해봤기 때문에 한참 MBTI 결과를 이야기했다. 난 배달 온 떡볶이를 조용히 먹었고.
‘게이미피케이션’, 게임화. 나는 쓸데없이 용어 만드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게이미피케이션이란 단어도 마뜩잖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있는 건 분명하다. MBTI도 그중 하나. 전통적 예를 들자면 카페 음료 쿠폰을 제공하는 것도 게이미피케이션이다. ‘도장 10개 모으면 선물을 준다고? 좋아, 도전!’ 나는 쿠폰 안 찍는다. 쿠폰의 노예가 되기 싫어서. 쿠폰 찍는 사람이 노예라는 건 아니고… 아무튼 나는 쿠폰 찍으려면 저 카페 가서 커피 사야 돼 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게 싫다. 어떤 날은 이 카페 가고 싶고, 어떤 날은 저 카페 절대 가기 싫고, 뭐 이럴 수 있으니까. 비유가 극단적이다. 절대 가기 싫은데 쿠폰 도장 찍으러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죠? 솔직히 대부분 사람들이 나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카페 사장이다. 뜬금없지만 정말 그렇다. 오전엔 카페에 가고 낮엔 회사에 간다. 지지난 주에 처음으로 쿠폰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다른 데는 도장 10개를 모아야 음료 한 잔 무료지만, 차별화 전략으로 8개만 모아도 음료 한 잔을 제공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도장 받는 칸 10개와 8개가 별 차이 없는 거 같다고 나는 생각했고, 손님들은 그게 다르다는 걸 보자마자 명확하게 인지했다. “어, 10개가 아니잖아. 8개만 모으면 된다고요?”
손님이 늘었다. 바로 다음 날 쿠폰 8개를 다 찍고 음료 교환을 해가는 분도 있었다. 물론 그분은 마침 집에 손님이 와 아아와 아라를 합쳐서 6잔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맙게도 그걸 우리 카페에서 샀을 뿐. 도장이 8개 찍힌 쿠폰을 내밀며 손님은 말했다. “바닐라라떼요. 이거 먹으려고 도장 모았어요.”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돈 내고 사 마시면 될 텐데…? ‘게임화’는 효과가 있다. 누군가에겐(고맙습니다, 손님!).
지금 크리스티닷컴에서 마이클 조던의 스니커즈 경매가 진행 중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가격대로 경쟁이 붙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데, 재밌는 게 하나 더 있다. 전시장 버추얼 투어가 가능하도록 해두었다. 마치 서든어택에서 주인공을 조정해 지도 위를 옮겨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가상 진열대에 실제 스니커즈가 놓여 있으니 ‘메타버스’인 셈이다.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 클릭하면 스니커즈 정보가 나타난다. 원하는 총에 마우스를 가져가면 총에 대한 정보가 나열되는 것과 비슷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시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일 텐데, 게이미피케이션 형태를 띠고 있다.
최근 클라이언트에게 이벤트 기획 요청을 받았다. 구독자에게 푸시 알람이 뜨고 할인 정보를 받는 건 늘 하던 방식이니, 이번엔 룰렛을 활용하자는 게 요지였다. 룰렛은 진부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그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진부한 건 맞지만 누구나 룰렛이 앞에 있으면 일단 돌리고 보니까!
스마트폰이 보급된 나라의 국민들은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 작고 네모난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런 면에서 게이미피케이션이 앞으로 더 확장될 것이라는 견해는 타당하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2019년 70억 달러 수준에서 2025년 350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5배? 음, 게임 형식을 적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그렇게 해보겠다는 건가? 우리 형은 두 아들이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걸 못마땅해한다. 종일 게임만 하니까. 음, 본인도 눕기만 하면 스마트폰을 왼손으로 들었다 오른손으로 들었다…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딴 얘기긴 한데, 스마트폰은 아이나 어른이나 원초적인 감정은 동일하다는 걸 새삼 알려준다.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조 바이든은 게임으로 가상 유세를 펼쳤다. 지지자들은 게임에 열심히 참여하며 지지 의사를 보였다. 게이미피케이션을 재미있게 게임하는 것 정도로 접근할 수도 있고,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다. 게임은 유저가 참여할 때 완성된다. 내가 생각할 때 좋은 ‘게임화’의 전제는 참여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MBTI가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건 참여자를 들러리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MBTI는 안 하면서 룰렛은 돌리는 건 뭐가 나오든 돌리는 주체가 나이기 때문이다. 룰렛이 재미있다기보다 내가 선택한 결과가 어떤 모습인지 보는 것이 흥미롭다.
뭐, 아무튼 나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성장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19 그 자식 때문에 이 현상이 가속화됐으니까. 밖에 나가서 게이미피케이션 아닌 게임을 즐기기를 원한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 부르던 노래로 마무리하자면, 술래잡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 다섯 명도 좋고, 여섯 명도 좋고. 일단 스마트폰은 좀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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