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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The Issue

마음을 만지는 과정

 

글 이우성 / 시인, 컨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서 그런 건지, 나는 배달앱이 싫다. 배달앱으로 돈 번 사람이 사촌이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촌이면 좋겠지. 아무튼 싫은 건 싫은 거고,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사용한다. 그래서 더 싫은 걸 수도 있다. 누를 수밖에 없으니까. 무인도 갈 때 한 개만 가져가야 한다면 뭘 가져갈 거야? 배달앱이 깔린 스마트폰! 배달의 용사들은 무인도까지 치킨과 떡볶이를 가져다줄 것이다. 좀 이상한 문장이지만, 배달앱은 생존이다. 내가 이 생존 도구를 싫어하는 건,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힘든데 그 와중에 돈을 많이 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통 속에서 누군가는 이득을 취하는 구조가… 아, 나만 이게 싫은가? 적고 나니 정신 이상자 같네.

코로나19 이전에는 라이더가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음식을 건네주었다. 결제가 완료된 상태라면 문 앞에 놔두고 가면 되는데, 굳이 만나서 전해주었다. “고맙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주고받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 걸까? 사실 그게 도리긴 하잖아?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대문 바깥으로 나가면 포장된 음식만 놓여 있다. 라이더는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사라진다. 완벽한 비대면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너무 간편하고 좋다. 너무 간편한 건 언제나 좋은 것이지? 가끔 야박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까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사라도 하고 가지. 정말 아주 가끔만 이렇게 생각한다. ‘굳이 더 불편하게 해드립니다’라는 서비스가 생기면 나는 굳이 이용해볼 것이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는데, 기분이 아주 좋은 순간도 있다. 비닐 포장을 뜯고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꺼냈는데,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을 때. 거기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정성스럽게 만들었어요. 맛있게 드세요. 만두 두 개는 서비스입니다.” 만두 두 개를 ‘선물’ 받아 기분 좋은 건 사실이지만, 더 큰 ‘선물’은 포스트잇이다. 코로나19가 인류를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했는데, 누군가 동굴 앞으로 다가와 안부를 물어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역시 위대한 동물이어서 팬데믹 상황에서도 살아갈 방도를 찾고 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언택트는 그런 의미다. 부정의 대상도 긍정의 대상도 아니다. 생존에 대한 거니까. 불편하냐고 물으면 당연히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최근에 한 리포트를 봤는데 코로나19가 끝나도,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계속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할 거라고 분석했다. 편하기 때문에. 문밖에 빨래를 내놓으면 다림질까지 해서 다시 그 자리에 놓아주는데 불편할 거야 없지. 그래미어워드 후보에 오른 가수들은 자국의 특정한 공간에서 공연을 했다. TV로 시청하는 사람들은 그 다채로운 풍경이 오히려 즐겁게 느껴진다.

재택이야 말하면 뭐 해! 최근 직원 면담 중에 몇몇이 이런 말을 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재택근무시켜주세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했다. “너무 편하고 좋아요”라고 덧붙였다. 해보니까 알게 된 것이다. 굳이 한 공간에 모여서 일하지 않아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대표니까 직원들이 내 눈앞에서 일해야 마음이 편하지만, 사실 그건 별 의미 없다. 그들은 결국 일을 한다. 어떠냐고 물으면 당연히 외롭다고 할 것이다. 나는 그렇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다. ‘클럽하우스’ 같은 소통 방식이 계속 생겨날 테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든 접촉할 테니까. 만나기 싫은 사람을 ‘걸러낼’ 수 있으니 오히려 스트레스도 덜 받고 훨씬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휴먼터치(Human touch)’라는 단어가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읽자마자 이해했을 거다. 언택트 시대에 인간이 외로움을 느낄 거라는 전제로 생겨난 단어다. 인간적 공감과 스킨십, 마음을 만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는 기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귀농은 인류의 일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일이다. 그런데 나는 궁금하다. 인류는 정말 휴먼터치를 원할까? 지금 충분히 잘살고 있는 거 아닐까? 휴먼터치조차 비대면 서비스의 발전된 형태 중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닐까? 비대면 서비스 경쟁 속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방식으로 ‘개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첨단 기술로 온기를, 마음을, 만들 수 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다.

거듭, 나는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클럽하우스’ 같은 건 안 한다. 맥도널드 키오스크 앞에서 아빠가 난감해하는 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다. 삐뚤빼뚤 볼펜으로 눌러쓴 작은 메모에 마음이 열리는 사람이다. 그래미어워드 후보들이 한 공간에 모여 공연하고 축하해주는 걸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한편으론 모두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외로워서가 아니라 더 행복하지 않아서.

뭐 아무튼 ‘휴먼터치’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에게 휴먼터치란 이런 것이다. 스마트폰은 주머니에 넣어두고, 친구랑 종이컵 두 개를 나눠 갖고 실로 연결한 후에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는 거. 들려? 아니, 내가 말하고 있으니까 너가 들어야지, 넌 너무 말이 많아, 티격태격하면서. 음, 더 정확하게 적자면 휴먼터치는 가느다란 한 줄의 실 같은 거 아닐까? 멀리 가거나, 세게 당기거나, 누군가 둘 사이를 가로질러가면 소리는 사라진다. 낯선 누군가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 작은 감정을 소중하게 지켜주는 거. 그런 게 휴먼터치면 좋겠는데. 나만 또 거꾸로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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