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SIDE/d-Culture

AI와 쏨땀

 

글 CR11팀 이혜현 CⓔM

 


 

2024 ADFEST를 한 달 남짓 남겨둔 어느 날, OpenAI에서 비디오 생성 AI ‘소라(Sora)’를 발표했다. 지금껏 봐왔던 생성형 AI와는 차원이 다른 결과물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이런 타이밍에 ADFEST 참가자들이 올해 행사에 기대하는 바는 더욱 분명했을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버린 AI 시대, 광고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스포를 하자면, 모든 강연자가 그 우려 섞인 질문에 대해 ‘걱정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AI is the essential tool with its infinite possibilities.

HI is the indispensable power that makes it all possible.

AI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중요한 도구다.

HI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힘이다.

2024 ADFEST 소개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최대 광고제인 ADFEST의 올해 테마는 <HI:Human Intelligence>였다. 많은 이들이 ‘인간지능’을 동력으로 ‘인공지능’을 도구 삼아 펼칠 무한한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었고, 그 기대감은 행사장을 둘러싼 야자수처럼 무성했다. 나는 업계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떠먹여주는 AI에 관한 인사이트를 얻어 볼 요량으로 인피니티풀과 칵테일의 유혹을 물리치고 강연장에 들어섰다.

 

 

AI : Ad Industry Friend or Foe?

‘인공지능, 광고의 친구인가 적인가?’ 이 토론 세션은 제목에 걸맞게 청중들의 실시간 투표로 포문을 열었다. 당연하다는 듯 응답자의 92%가 ‘친구’에 투표했다. AI는 일자리를 뺏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도구로써 사용되어 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그렇기에 AI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며 어떻게 텍스트 프롬프트 이상의 것을 도출해 내는가가 생존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패널들은 AI가 더 이상 AI라고 불리지 않을 만큼 대중화될 날이 올 것이라 단언했다. 우리가 일할 때 자연스럽게 구글을 여는 것처럼 AI도 업무툴로써 자리 잡는 중이다. ‘Don’t compete with machines. Push the machine and let it run.’ ‘기계와 싸우려 하지 말고, 밀어붙여서 일하게 해라.’ 패널들의 확신 덕분에 회사에 가면 미드저니를 열심히 돌려봐야겠다는 모종의 압박감을 얻을 수 있었다.

AI를 통해 소라처럼 극사실주의를 표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AI만이 가진 뉘앙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도 중요해 보였다. 한 패널은 자신의 이모, 고모, 어머니, 할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아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티스트인 Niceaunties의 작품을 소개했다. 중장년 아시아 여성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AI로 그려내는 그는 독특한 상상력을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생성,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아줌마(Auntie)’의 평행우주를 구축해내며 AI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아줌마(Auntie)’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AI로 그려내 중장년 아시아 여성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싱가포르 여성 아티스트 Niceaunties

 

진행자는 AI의 한계 중 하나인 편향성(Bias)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AI가 인간의 고정관념을 답습하고 데이터 편향성이 짙어져 종종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미드저니의 편견을 정면으로 이용한 프랑스 모빌리티 플랫폼 Heetch의 <Greetings from la Banlieue>라는 캠페인을 소개한다.

 

편견 가득한 AI 이미지에 실제 이미지로 정면승부한 프랑스 모빌리티 플랫폼 Heetch의 <Greetings from la Banlieue>

 

프랑스에는 La Banlieue, 즉 대도시 외곽의 교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그것은 미드저니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프랑스의 결혼/교실/아이들/청년’을 입력했을 때 미드저니는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미지를 생성했다. 거기에 ‘교외(banlieue)에서’라는 텍스트를 추가하자 이미지 속 배경은 폐허에 가까운 열악한 장소로 바뀌었고 심지어 백인이 유색인종이 되기도 했다. Heetch는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해당 지역의 실제 사진을 수천 장 찍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banlieue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수많은 엽서를 미드저니 개발자들 앞으로 보내 시정을 요구했다.

AI로의 전환이 현재진행형이며 현업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제 막 시작 중인 탓에 저작권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정도의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실시간 Q&A에서 눈에 띄는 질문이 있었다. 앞으로 모두가 AI 툴을 사용하게 된다면, 경쟁사와 어떤 식으로 차별화해야 할까? 너무나 궁금한 내용이었지만 패널들의 답변은 뻔한 경향이 있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질문은 해결되지 못한 채 ADFEST 내내 뇌리에 박혀 있었고 나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야 했다.

 

출처 adfest.com

 

Battle of Talents : Human vs Machine

‘재능 대결 : 인간 vs 기계’ 역시나 이 시국에 흥미를 끌만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강연은 인간만이 꿈꿀 수 있는 새로운 차원과 규모를 더하는 데 AI를 활용한 캠페인을 살펴보고자 했다. 맥켄 그룹 아시아 태평양 CCO 발레리 매든은 “창의력은 복잡한 인간적 특성으로 감정, 문화 및 경험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와 인간의 대비가 드러난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가 어떻게 AI를 지렛대 삼아 나아갈 수 있는지 모색했다.

 

언더아머 <Protect This Dream : AI Version> 중 / 출처 toolofna.com

 

스티븐 커리가 출연한 언더아머 광고 두 편은 인간이 잘하는 영역과 AI가 잘하는 영역이 다름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Protect This House><Protect This Dream>. 똑같은 브리프를 바탕으로 전자는 감독이 직접 촬영한 광고이며, 후자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제작한 일종의 리믹스 버전이다. 강연자는 현장에서 두 영상을 틀어주며 어떤 것이 더 울림을 주는지 청중에게 질문했다. 여러분도 어느 영상에, 왜 더 마음이 가는지 한번 비교해서 보면 좋겠다.

두 영상을 감독한 웨스 워커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상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성형 AI는 도구일 뿐 영화 제작 과정을 전부 대체할 수 없으며 따라서 지금 어느 때보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AI를 통해 비주얼 서사는 새로워질지언정 누가 만드냐에 따라 깊이 차이가 극명해질 것이라는 뜻이겠다.

 

런처블 덩커블 <AI vs KI : Kid Imagination> / 출처 lunchables.com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간편식 브랜드인 런처블의 <AI vs KI> 캠페인이다. 이들은 생성형 AI와 어린이에게 동일한 프롬프트-환상적인 프레츨/모짜렐라 스틱을 그려줘-를 입력(?)했고, 결과는 모두 어린이(Kid Imagination)의 압승이었다. AI 기반의 이미지는 어디선가 본 듯한 범주에 존재했고 KI 기반의 이미지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기발함으로 가득했다.

인간 대 기계, 재능 대결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싸움이 필요하긴 할까요?” 우리에게는 AI를 단순한 생산성 도구 이상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사용자의 역량이나 AI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AI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3월의 파타야에서는 뜻깊은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ADFEST는 다양성으로 넘쳐나는 축제였다. 코첼라 무대에서 망고 밥도 먹고 퍼포먼스도 씹어 먹은 태국 래퍼 밀리의 소속사 88rising은 아시아 음악의 저변을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끌을 파는 디자인과 로컬에 대한 애정을 더해 전 세계 광고제를 휩쓸고 있는 JR의 <My Japan Railway> 캠페인은 2024 ADFEST 또한 휩쓸었다. 로컬 문화만의 풍부한 유산과 가치를 기념하는 작품에 상을 주는 로터스 루츠(LOTUS ROOTS)의 수상작들은 가장 로컬적인 인사이트로 가장 보편적인 공감을 샀다.

로터스 명예의 전당에는 인도 광고의 대가 피유시 판디가 올랐는데 소감이 인상 깊었다. 그는 “태국 광고계가 자신의 문화를 굳게 믿고 나아가는 모습이 정말 좋았고 언젠가 인도의 광고도 그렇게 되길 소망했다”며 젊은 광고인들에게 ‘Believe in your culture’라는 묵직한 한마디를 남겼다. 올해의 심사위원장인 말콤 포인튼 CCO는 시상식 내내 ADFEST가 다양성의 축제임을 강조했으며 애프터 파티에서는 크리에이티브로 뭉친 사람들 사이로 수십 개의 언어가 오갔다. 광고 인생 중 제일 다이나믹한 한 주가 끝나갈 무렵, 첫날 토론 세션에서 나왔던 질문을 떠올렸다.

 

앞으로 모두가 AI 툴을 사용하게 된다면

경쟁사와 어떤 식으로 차별화해야 할까?

 

만족스러운 답을 듣지 못했던 이 질문. ADFEST 3일간의 여정과 태국의 미식 여행 끝에 나만의 답에 대한 윤곽이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고 문득 머릿속에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쏨땀.

 

출처 freepik.com

 

ส้มตำ. 태국을 대표하는 샐러드. 아삭하고 신선한 파파야에 감칠맛 나는 피쉬소스와 태국 고춧가루, 라임즙 한 바퀴, 새콤, 짭짤, 매콤, 감칠맛으로 무장하고 땅콩의 고소함까지 더한 입맛 도는 샐러드. AI가 이 다채로움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까? 로컬의 식문화만큼 유구하며 고유한 무언가를 생성할 수 있을까? 쏨땀, 김치, 우메보시, 자차이, 도추아를 ‘피클’이라고 뭉뚱그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지역 문화에 관심이 있을까? 다양성의 축복을 이해하고 집집마다 다른 쏨땀 맛을 음미할 수 있을까? 다 떠나서, 쏨땀의 어감이 얼마나 귀여운지는 알까?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스테레오 타입과 편견을 경계해 왔다. 크리에이티브가 납작해지거나 게을러 보이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특히 우리는 아시아인으로서, 남성이나 여성으로서, 혹은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가며 자신만의 ‘쏨땀’을 내재화하고 있다. 나는 ‘쏨땀’을 집단 또는 개인의 고유한 경험, 감정, 문화적 밑바탕 등 다양성의 총체라고 감히 정의해본다. 무엇이 됐든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태도. 이것이 편향성과 속도로 무장한 AI를 주무를 수 있는 인간의 역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ADFEST를 통해 AI로 생산성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며 실제에 가까운 이미지를 생성해 내는 것은 일차적 문제라는 교훈을 얻었다. 차별화를 위해서는 AI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되 무엇을 구심점으로 잡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쏨땀적 크리에이티브를 거침없이 이어가고 있는 태국 광고가 AI 시대에 펼칠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푹푹 찌는 여정을 함께 해준 7인의 DCG 가족에게 감사드리며, 나도 나만의 ‘쏨땀’을 찾아내 AI라는 격랑 속 크리에이티브라는 배에 몸을 실어보려 한다.

 

0123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