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지원 / 제이앤브랜드 대표. 아이덴티티 기획, 브랜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두루 경험한 후 다방면에서 마케팅 솔루션을 풀어낸다. 저서 <뉴그레이> <맥락을 팔아라> <어바웃 브랜딩> 외 다수.
안티에이징의 시대가 있었다. 노화를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나이 드는 것을 막는다는 개념으로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내포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루하루 노화되는 신체나이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노하우, 기술을 받아들여 나이 드는 과정마저도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든다는 접근이 어필하고 있다. 바로 웰에이징 혹은 슬로우에이징(Slow Aging)이다.
느리지만 보다 확실한 근거와 루틴
슬로우에이징 관점의 제품은 보다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을 찾아 이를 생활루틴에 정착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피부관리에 공학적 시각으로 접근한 브랜드가 있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의 CEO가 화장품을 만들어 화제가 된 KYYB라는 브랜드다. 이들은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피부에 대한 문제를 발견하고 과학적 탐구와 기술을 통해 솔루션을 찾아간다.
수분크림 하나를 설명하면서도 ‘분자’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가능하다면 저분자가 아닌 고분자 히알루론산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0~3000 나노 고분자 히알루론산이 겨우 40 나노 밖에 안 되는 피부 틈새를 통과해 피부에 침투하는 나노 솔루션을 기술적으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런가 하면 괄사와 콜라겐을 결합해 단기간에 주목받은 종근당 레티노콜라겐 괄사목주름크림도 젊은 층의 선호를 끌어냈다. 이 제품이 젊은 층에게 통했던 포인트는 바로 지속적으로 효과를 주는 루틴이라는 점이다. 디바이스나 괄사를 따로 사용해야 하는 불편을 제거했고 무엇보다 젊은 층에게도 고민인 목케어에 초점을 맞춘 제안이라는 점이 유효했다.
이처럼 슬로우에이징을 실현하는 제품은 확실한 근거, 그리고 지속적인 생활루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20, 30대가 피부과 고객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피부과 관리가 특별한 이벤트였지만 지금은 더 확실한 효능을 갖춘 루틴이라 판단해 젊은 층의 슬로우케어 영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나이를 받아들인 다음의 행보
‘젊어지는 게 아니라 더 좋아지는 것’이라는 뜻의 베러낫영거(Better not younger)는 44세 이상의 여성을 위한 헤어뷰티 브랜드다. 이름에서 이미 도도한 시니어의 감성과 기존의 관념을 깬 통쾌함이 느껴지는 이들은 P&G, 로레알에서 오래 근무한 손솔레즈 곤잘레즈(Sonsoles Gonzalez)가 만들었다. 평소 뷰티업계가 44세 이상의 고객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갖다가 자신이 그 나이에 들어서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구상한다.
나이 들어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건 오케이.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품이 없으니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브랜드가 제안하는 건 흰머리를 다시 검게 물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레이 헤어를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관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제품이다. 이는 시니어뿐만 아니라 은발이나 애쉬톤으로 염색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를 얻게 된다. 성공한 중년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변화를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관리하는 방식을 제안해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모습은 당초 목표했던 시니어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에서 호응을 얻었고 글로벌 화장품 유통 세포라(Sephora)에도 입점하게 된다.
나이 듦을 실험하다
배우 기네스 펠트로가 사업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다름 아닌 그녀의 폐경 덕분이다. 2018년 46세의 기네스는 에스트로겐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폐경기 초기 증상을 겪고 있다고 고백했다. 땀이 나고 갑자기 이유 없이 화가 치미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해결책으로 마담 오바리(Madame OVARY)라는 브랜드를 소개했다. 폐경기 여성에게 좋은 각종 영양제를 혼합한 제품으로 소설 <마담 보바리>를 연상시키며 난소를 의미하는 ‘Ovary’를 결합한 위트 있는 브랜드로 폐경기를 함께 준비할 것을 제안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중요하지만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적 없는 폐경, 섹스, 정신적인 건강 등을 이야기하며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기네스 펠트로의 웰빙 실험실(the goop lab)>은 말 그대로 실험적이다. 행복을 구현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 보는 과정에서 그녀는 약물을 활용한 치료, 저온 노출, 비건, 디톡스, 여성의 쾌락 등을 탐구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참가자 각자의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허용 범위 등에 맞춰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네스는 5일 디톡스와 100개 침술을 받는다. 누구는 매직 머쉬룸(환각 버섯)을 사용하고, 누구는 눈밭에서 수영복 수행을 하는 콜드 테라피를 한다. 전문가의 강요가 아니니 유행에 휩쓸릴 필요도 없다. 건강식품 PPL에 속아 넘어갈 일도 없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웰니스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믿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금주가, 누군가에게는 매일의 위스키가 건강해지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항상 질문하는 것입니다. 성생활, 정신적인 생활, 먹는 음식, 일하는 방식 그리고 죽을 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찾은 대답들은 저마다의 웰니스에 다가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이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나이 듦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실험하는 그녀는 많은 젊은 층의 롤모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시니어 상을 개척하는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나이를 버리고 나를 찾는 법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부르는 66세 인순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 얘기를 하는 건 의미가 없다. 나이를 먹으면 용기를 내려놓게 된다는 말은 이제 절반만 맞는 말이다. ‘댄스가스 유랑단’에 출연해 과거팔이 하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이효리는 오히려 김완선, 엄정화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다고 말한다. 인류가 처음 겪는 초유의 고령화 시대를 맞아 모두가 성공사례와 레퍼런스를 찾는다.
좋은 접근을 했다고 평가받는 많은 사례의 대부분은 나이와 함께 겪는 변화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진심으로 개선하거나 해결하려 했던 사람들, 그런 시도를 담았던 브랜드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나이가 그저 숫자에 불과할 수는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 신체의 변화로 느끼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 변화로 인해 더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사람들, 브랜드들이 결국 미래를 바꾼다는 이야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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