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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음악은 더 이상 듣는 게 아냐

 

글 임희윤 / 음악평론가.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 <K-Pop으로 보는 대중문화 트렌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외.

 


 

최근의 일이다. 7월 1일자 빌보드 싱글차트에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다. 정식 명칭은 ‘빌보드 핫 100’인 이 차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를 가리는 경합장인데 종합 1, 2위 모두를 컨트리 아티스트가 차지했다. 모건 월렌과 루크 컴스가 그 주인공. 1, 2위를 컨트리가 석권한 것은 1981년 이후 무려 42년 만의 일이다.

빌보드는 원인 분석에 나섰고 기획기사를 통해 유력한 원인 중 하나를 ‘틱톡’으로 지목했다. 주류 미디어에서는 소외받는 듯한 컨트리 장르에 여전히 충성도를 가진, 별나 보이지만 상당수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틱톡에서 그들만의 탄탄한 커뮤니티를 형성했고, Z세대 팝의 요소를 대거 껴안은 젊은 컨트리의 시청각적 매력이 숏폼을 통해 부응해 결국 바이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빌보드 핫 100 1, 2위를 차지한 컨트리 뮤직 아티스트 모건 월렌과 루크 컴스 / 출처 billboard.com

 

보고 따라 하는 음악으로

음악은 듣는 것이다? [음악(音樂):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표준국어대사전에 적힌 음악의 정의에 따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와 함께 수천 년 동안 확고했던 저 음악의 정의는 최근 몇 년 사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음악은 보고 듣는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이라면 이쪽이 더 이치에 맞게 들리리라. 1981년 미국에서 탄생한 MTV는 전 미국인의 안방에 ‘보이는 음악’을 배달했다. 하지만 2016년 중국에서 출생한 틱톡은 세계인의 스마트폰에 그걸 24시간 꽂아 넣고 있다. 그것도 큰 예산을 들여 잘 제작된 4분짜리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후딱 따라 만든 몇 초짜리 숏폼 콘텐츠의 형태로 말이다. 4분이면 240초다. 그러니까 뮤직비디오 한 편 틀 시간에 20초짜리 숏폼 12종을 이용자의 화면에 쏟아낼 수 있는 틱톡은 콘텐츠의 ‘연사 기관총’, 광고홍보의 신세계다.

틱톡이 음악계에서 뜨거운 플랫폼으로 떠오른 건 2020년 무렵. 국내에선 그 해 1월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가 있었다. 미니멀하고 경쾌한 악곡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대는 이 영상은 동료 가수와 연예인을 거쳐 일반인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아무노래’는 순식간에 종합 음원 차트 1위를 달성했다.

 

(좌) 1977년에 발표된 곡 Dreams를 역주행하게 만든 틱톡 영상 (우)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 출처 tiktok.com/@420doggface208, tiktok.com/@kozico091

 

미국에서도 그 해 사건이 일어났다. 1977년에 발표된 곡이 틱톡을 타고 43년 만에 빌보드 싱글차트를 역주행한 것. 주인공은 미국 아이다호에 사는 감자 보관창고 관리인 네이선 어포다커 씨. 그가 출근길에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가며 어떤 노래에 맞춰 크랜베리 주스를 들이켜는 20초짜리 영상이 급속도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노래는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로 단숨에 빌보드 싱글차트 21위까지 광속 점프했다. 발표된 1977년 이후 이 노래의 차트 진입은 처음이었다.

 

출처 newsroom.tiktok.com

 

그로부터 2, 3년이 지난 지금. 이제 틱톡을 거치지 않은 스타, 숏폼을 휘젓지 않은 히트곡을 찾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꽃 챌린지’ 열풍을 일으킨 지수의 ‘꽃’은 물론이고 올리비아 로드리고, 데이비드 쿠슈너, 카니 등 새로운 스타들은 틱톡의 수혜를 듬뿍 얻었다. 레이디 가가가 2011년 앨범 ‘Born This Way’에 실었지만 너무 깊숙이 박혀 주목받지 못했던 수록곡 ‘Bloody Mary’는 빨리 돌린(sped-up) 버전이 틱톡 바이럴을 타며 발표 12년 만에 빌보드 싱글차트 진입을 이뤘고 미겔, 메건 트레이너 등의 곡이 틱톡의 ‘심폐소생술’을 통해 히트곡으로 거듭났다.

노래에 있어 틱톡 바이럴의 핵심은 ‘따라 하기’다. 따라 하기는 수천 년 인류 음악 역사에서 지독한 금기였다. 표절이란 곧 예술적 사망선고였으니까. 하지만 숏폼에서는 안 따라 하면 죽는다. 이른바 챌린지다. 한국말로 도전인데, 그럴듯해 보이지만 지금껏 인류가 개발한 모든 프로모션 방안 중 가장 쉽고 진입장벽이 낮다. 수개월간 실력을 갈고닦아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를 기타 연주와 함께 커버한다? 이건 고릿적 유튜브 바이럴 시대 얘기. 간단한 손동작과 표정을 몇 초만 따라 해주면 끝이다.

 

달라진 마케팅 방식까지

음반사 입장에서는 팔로어가 수천 만에 육박하는 틱토커들에게, 또는 그들을 관리하는 에이전시에게 소정의 광고료와 함께 신곡 챌린지를 의뢰하면 된다. 금세 수천만 이용자의 스마트폰으로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배달된다. 맘에 드는 이들은 다른 플랫폼으로 향할 것이며 노래에 ‘좋아요’를 누르고 알고리즘의 또 다른 추천을 기다릴 것이다. 그 플랫폼이 유튜브라면 공식 뮤직비디오와 연계된 안무 연습 비디오, 커버 댄스 영상 등이 이용자에게 쏟아지게 된다.

 

 

숏폼 바이럴은 ‘숏폼의 원조’ 격인 ‘광고’와도 찰떡이다. 숏폼 스타는 곧 광고 스타가 될 가능성도 높다. 데뷔 1년 만에 대세로 올라선 뉴진스는 데뷔곡 ‘Attention’이 나왔을 때만 해도 청소년들 사이에선 아이브, 르세라핌에게 밀리나 싶었지만 ‘뉴진스의 하입보이요’ 콘텐츠가 바이럴되자 ‘Z세대, 알파세대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했다. 그 폭풍은 코카콜라와 협업한 ‘ZERO’로 이어졌고 ‘코카콜라 맛있다’라는 노골적 가사가 박힌 광고 매칭 음악으로선 이례적으로 기존 음원 플랫폼에서도 최상위권을 점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당신이 20세기 소년소녀라면 반사적으로 위 텍스트는 멜로디가 될 것이다. 제창과 함께 손끝이 짭짤해지거나 혓바닥이 빨갛게 변하는 환각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김도향 씨가 만든 이 선율은 광고음악의 힘을 보여줬다. 어쩌면 그 안에 케이팝 후크송의 DNA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독일의 한 마트 체인이 케이팝 스타일의 숏폼 광고를 만들어 유럽에서 대박을 치고 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의 숏폼이 세계를 흔드는 지금이다. 초 단위로 만들고 초 단위로 보고 초 단위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광고인들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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