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인의 사생활>은 대홍 크리에이터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사진 에세이 코너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답고 즐거운 걸 보며 깔깔 웃기만 해도 짧은 우리 인생을 위한 EATFLIX
대홍기획 카피라이터의 음식 & 컨텐츠 큐레이션
오매불망 기다리는 황금연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끝을 향해 달린다.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그러니 일단 먹고 보자.
연휴의 끝엔 햄벅한 코미디
80년대생 남자, 11년 차 회사원의 EATFLIX
짧았다. 연휴가. 그리고 ‘이번 연휴는 다르겠지’라는 생각이. ‘내일부터’를 입에 달고 신나게 먹고 자다 보니 연휴의 끝에 와버렸고 ‘내일부턴 진짜 조금만 먹고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다짐한다. 한두 번 해본 다짐이 아니라서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이런 날 자책하고 후회하기보다는 햄버거를 먹어두는 것이 좋다. ‘내일부터’라는 다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최대한 망쳐놓아야 한다. 그래야 내일 조금만 노력해도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리고 우울한 마음을 달랠 행복함이 필요한데, 햄버거를 빠르게 반복해 읽으면 행복과 비슷한 소리가 나서 먹을수록 행복해진다. 무엇보다 햄버거는 맛있다. 여러모로 이런 날 먹기에 제격이다.
햄버거와 맥주, 핫소스를 섞은 케첩에 감자튀김. 그리고 이 음식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을 불러낸다. 오늘은 영화 <튼튼이의 모험>에 나오는 충길이다. 햄버거와 이 영화, 그리고 충길이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장면도 없고, 햄버거를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재능은 좀 부족하지만 마음만큼은 국대급인 시골 레슬링부의 전국체전 예선전 참가 이야기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을 웃기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연휴 마지막 날에 필요한 자세니까.
충길이와 친구들 그리고 코치가 만드는 감히 웃을 수 없는 짠내 나는 찐 이야기와 함께 햄버거를 ‘왁’하고 베어 먹고, 쓸데없는 진지함에 피식할 땐 맥주를 마시고, 순수함과 무모함을 오갈 때 감튀를 먹는다. 그러다 보면 배가 부르고 영화는 끝이 나고, 충길에게 빙의해 “이번 연휴 좀 망치면 어때, 다음 연휴가 있잖아~ 쎄이야!”하고 잠들 수 있을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연휴를 후회하거나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다음에도 또 그럴 거니까. 원래 연휴가 그런 거다 생각하고 마음 편히 햄버거 먹으며 유치한 코미디 영화를 보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세상, 그냥 먹고 보는 게 남는 거다.
내일은 낭비왕
90년대생 여자, 3년 차 회사원의 EATFLIX
나만 알고 있는 지구촌의 비밀이 있다. 인간을 정확히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인데, 이게 세상에 공개되면 노벨 흑백논리상으로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건 바로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뒀을 때 가장 먼저 냉큼 먹어버리느냐(먹-플렉스형 인간), 제일 마지막에 여유롭게 음미하느냐(푸드-스크루지형 인간)에 따라 지구를 반으로 쪼갤 수도 있다는 거다.
2021년을 살아가는 직장-인간에게 황금연휴만큼 달콤하고 귀한 음식은 없다. 몇 번의 연휴를 겪어보니, 연휴란 것은 아끼면 아낄수록 ‘똥’됐다. 그 까닭에 푸드-스크루지형 인간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내가 점차 먹-플렉스형 인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 거창한 계획과 함께 야심차게 시작한 연휴는 일평균 20시간 침대에 누워 보낸다. 후회와 자괴감으로만 채우기엔 이 밤이 너무 짧고 소중하니까. 나는 거금 2만 원을 들여 참치뱃살 3피스가 포함된 특상 초밥을 주문한다.
제일 맛있는 참치뱃살 초밥을 먼저 먹는다. 그래, 이 맛이야. 아끼는 초밥이라고 해서 마지막에 먹었다면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 희열. 연어, 계란, 새우 따위로 배를 채운 후에는 느낄 수 없었을 강렬한 쾌감.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만은 내게 파도처럼 밀려와 줘라, 만끽하고서 나는 남은 초밥들과 자정을 가리키는 핸드폰 시계를 번갈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바로 이 라이브 클립을 보며 첫입에 느낀 참치뱃살의 맛을 제대로 암기하기로 한다.
화려했던 여름휴가의 마지막 밤처럼 이 연휴의 끝도 기억되길. “오늘 같은 밤이면 통장을 털어서 폭죽에 불을 다 붙일 거고, 심해에 들러서 용왕하고 Flex도 하고 올 테니까.” 방 안의 Seaside에 앉아서 부른 배를 두들긴다. 그리고 저 너머에 이미 도착한 내일 아침을 노려보며, 또 다짐한다.
돌아오는 다음 황금연휴에도 기필코 제일 좋아하는 피스부터 시작해야지. 계란, 새우 초밥을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흡족하게 웃을 수 있게, 그렇게 낭비왕이 되어야지- 하고서. 허무하게 연휴를 보내도 우리에겐 다음 기회가 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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