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간접광고
글 조명광 / 씨엘앤코 대표컨설턴트, 비루트웍스 CEO, 한양대 사이버대학원 마케팅 MBA 겸임교수. 신세계백화점, 현대캐피탈, 삼성카드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저서 <21일 마케팅> <호모 마케터스> <마케팅 무작정 따라하기>.
* PPL: Product Placement(제품 배치)의 약자로 임베디드 마케팅이라고도 한다. 간접광고의 대표적 형태로 원래 영화에서 소품을 둔다는 의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주로 방송 프로그램 속 소품을 통해 광고하는 상품이나 행위를 의미한다.
2019년 드라마 애호가들의 SNS 타임라인을 뒤덮은 <멜로가 체질>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화제성은 좋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시청률은 저조했다. 그럼에도 장범준이 부른 OST가 인기를 끌었고, PPL을 다루는 솜씨도 화제가 됐다.
극 중 주인공인 안재홍은 드라마 PD, 천우희는 작가로 PPL이란 주제가 여러 에피소드에 고스란히 담겼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배우가 PPL 상품에 반감을 가지고 촬영을 거부하면 대행사 직원들이 어떻게든 노출되게 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고, 드라마 전개와 어울리지 않는 억지스러운 PPL을 넣으라는 압박으로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는 유쾌하게 대놓고 PPL에 관해 이야기하고, PPL임을 보여주며, 드라마 전개와 어울리게 구성해 시청자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상업방송에서 PPL은 잘 표현하기 어려운 광고다. 광고 시간에 하는 광고라면 ‘광고려니’하고 보게 되지만, PPL은 태생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노골적인 어필이 부정적 영향으로 나올 수 있어 극의 전반적인 흐름에 어울리도록 적용하기 쉽지 않다.
PPL은 상업방송에서 생존을 위해 감내해야 할 불편한 동거인일 수밖에 없다. 요즘 방송사들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수입을 창출한다고는 하지만, 광고 수입이 가장 높기 때문에 여전히 시청률에 목을 매고 있다. 시청률 높은 드라마는 돈 되는 PPL이 많이 붙고, 그럴수록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상품도 들어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내느냐가 PD와 작가의 몫이라면, 광고라는 게 뻔해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이해해주는 아량은 시청자의 몫일 것이다. 좋은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최근 시청자의 안목과 인내의 폭이 넓어졌다고는 하나, PPL은 여전히 어렵다. 광고주와 제작자의 입장, 그리고 시청자의 입장에서 PPL을 대하는 3자 모두가 만족스러워야 한다. 그래서 어차피 들어가야 할 장면이라면, 어차피 받아야 할 광고비라면 서로 웃으며 협상할 수 있도록 상품을 스토리에 잘 녹여야 한다. 그리고 노골적인 PPL이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현명한 PPL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고 한다. PPL의 세계에서도 이 말이 통용될 수 있을까? 즐길 수 있는 PPL을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 캐릭터와 한 몸이 되는 PPL
대체로 PPL의 세계에서 갑은 드라마나 영화 등 컨텐츠 생성자이고, 을은 상품 공급자다. 양자 모두 PPL로 광고효과를 보기 위해 택해야 할 최우선 전략은 철저한 캐릭터 분석이다. 자동차 PPL로 유명한 영화가 있다. 바로 007시리즈. <007 골드핑거>에서 시작된 자동차 PPL은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다음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의 본드카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게 했다.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면 자동차 회사들은 영화 속 본드카로 낙점되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이는 자동차가 제임스 본드 캐릭터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면 조금은 부끄럽다. 갑자기 키스 씬에서 타고 있던 차의 자율주행 기능을 자랑하거나, 재벌 회장님이 뒷좌석에 탈 만한 차로 보이지 않는 검소한 모델이 나오기도 한다. 프로그램마다 PPL을 녹이는 방식을 달리해야 하는데, 제작 여건상 힘들기도 하겠지만 정성을 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아 보여 아쉽다.
제작 초기에 컨텐츠 성격에 맞게 PPL을 미리 정해두면 낫긴 하지만, 갈수록 시청률이 오르는 드라마의 경우 마지막 회로 향할수록 몰입을 방해하는 상품들이 마구 등장하기도 한다. 제임스 본드의 본드카처럼, 전지현의 코트처럼, 효리네 차처럼 캐릭터와 어울리는 상품으로 컨텐츠의 흐름이나 극 중 캐릭터에 부합하는 상품을 미리 연구해 PPL을 잘 설계하면 본드카까지는 아니라도 시청자의 호의적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 TPO에 맞는, 극의 배경이 되는 PPL
캐릭터에 어울리는 PPL도 중요하지만,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것도 필수다. 시청자가 PPL에 골내는 가장 큰 이유가 극이나 상황의 흐름과 동떨어진 갑작스러운 PPL의 등장이다. 집안에서 대화를 이어가던 두 사람이 갑자기 공기 청정을 하자며 기기의 전원을 누른다. 카메라는 제품을 클로즈업하고, 제품을 만든 회사의 로고가 화면을 꽉 채웠다. 이후 카메라 앵글이 뒤로 빠지며 제품의 전체적인 모양을 보여줬다. 방송 후 드라마 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드라마 <미생> 속에 등장하는 사무용 복사용지 PPL. 직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화면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PPL이 광고효과가 좋은 것은 당연하다. 물론 컨텐츠 자체의 인기가 있어야 하지만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PPL의 효과는 당연히 높아진다. 성공적으로 노출된 제품을 찾는 글은 이후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PPL과 어울리는 컨텐츠 개발
최근 PPL은 더욱 진화해 PPL이 자연스럽게 컨텐츠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KBS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은 편의점에서 팔 상품을 만드는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그래서 편의점 등장이 자연스럽고, 본방송 이후 대결에서 승리한 상품이 편의점에 진열돼 소비자의 호응과 참여를 유도하기 적절하다. SBS 예능 <맛남의 광장>은 전국의 특산물 이용을 장려하는 컨셉이다. 방송 후 자연스럽게 이를 매장에 내놓을 수 있는 대형마트와의 협업이 잘 짜인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시청자들도 이제 PPL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프로그램 방영 후 청원을 통해 출연했던 인물이 PPL을 진행한 회사의 모델이 되게 하는 일도 흔해졌다. 시청자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컨텐츠 기획자나 제작자는 PPL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진지해야 한다. 특히 대형 방송사는 직접광고 비중이 줄어들고, 간접광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 시청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본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PPL이 시청환경과 유통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보고 PPL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컨텐츠 공급자가 늘어서 수요가 많아진 것인지, 수요가 다양해지며 많은 공급자가 생긴 것인지는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다. 그동안 PPL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규제도 점차 풀려가며 사업자 입장에서는 PPL 하기 좋은 시절이 됐다. 하지만 시청자는 광고와 컨텐츠를 구별해야 하는 임무까지 부여받은 것이 달갑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현명한 PPL 전략을 세우는 것이 컨텐츠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윈윈하는 길이라는 것은 더욱 자명하다. 또, 제품 노출에서 끝나는 시대가 아니니 SNS 등을 통해 PPL을 재미있는 컨텐츠로 받아들이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360도 채널&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한 고민을 통해 현명한 PPL 전략을 진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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